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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목계단길을 오르면서 뒤돌아 보는 '오천' 쪽 풍광,



붉은 망게열매들을 지나고,



얼마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저- 앞으로 표지목이 나타나는데,



현위치, '적대봉, 오천, 파성재 삼거리', 오천에서 5.7Km 올라 온 지점, 이제 적대봉까지는 0.3Km, 적대봉을 지나 가야 할 파성재까지는 2.3Km,



삼거리에서 바라 보는 파성재 쪽 풍광,



적대봉을 올랐다가 다시 이 삼거리로 내려와 파성재 쪽으로 진행 할 예정이다.



산행초입이었던 '오천' 쪽 풍광, 조그만 저수지는 '오천제',



오천에서 적대봉 삼거리까지 올라 오면서 단 한명의 등산객도 만날 수 없었는데...

삼거리에서 적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이 지나다닌 것일지... 등산로는 아예 움푹 패여 있는데...


아침에 오천까지 태워다 준 택시 기사분의 이야기대로 오천 쪽으로는 등산객이 거의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적대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파성재' 쪽인 듯 하다.



적대봉(積臺峰, 592m),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한 가운데 솟아 있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고래등같은 모습이다. 바다 건너 북쪽으로 천등산, 마복산, 서쪽으로는

천관산과 마주본다. 산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완도, 남쪽으로 거금도, 동쪽으로 여수시 부근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좋으면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정상에 둘레 34m, 지름 7m의 큰 봉수대가 있었다. 산행은 서쪽 능선을 가로질러

거금도 남북을 잇는 임도 북쪽 끝의 성치마을에서 시작한다. 산행 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

산 기슭에는 조선시대에 목장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금도는 이웃한 소록도, 절제도, 시산도, 나로도와 함께 도양() 목장에

속한 속장()의 하나였으며 이 산을 중심으로 성을 쌓아 말 116마리를 키웠던 세납() 목장이 있었다. 거금도 남북을 가로질러 석정리와

어전리를 잇는 임도 곳곳에는 아직도 목장성 흔적이 남아 있다.



적대봉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봉수대(烽燧臺)'는 조선시대 때 왜적의 침입 등 비상사태를 전달해주던 것으로 둘레 약 34m, 직경

약 7m의 규모이다. 전국의 봉수대 가운데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봉수대 안쪽으로는 또 다른 조그만 정상석이 보이는데, 아마도 커다란 정상석은 어느 산악회에서 기념으로 세운 듯 하고...

이 작은 정상석이 원래 있었던 정상석이 아니었을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봉수대에서 바라 보는 거금도 일대 풍광,





거금대교, 소록대교, 녹동항 쪽 풍광,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하는 '거금대교',



제주도로 쾌속페리가 오가는 '녹동항',









산행초입이었던 '오천리' 쪽 풍경,



봉수대에서 바라 보는 '적대봉 정상석', 정상석 뒤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부가 하산길이면서 다음코스인 '파성재'를 지나 '송광암',

'용두봉(418.6M)' 쪽으로 가는 길,



현위치, '적대봉 정상(592m)', 오천에서 6Km 올라 온 지점, 파성재까지는 2.6Km,



정상에서 적대봉 삼거리 쪽으로 내려 가면서 바라 보는 '파성재' 쪽 풍광,







현위치, '적대봉 삼거리', 오천에서 올라 왔었던 삼거리, 이제 파성재 쪽으로 진행,



뾰족하게 솟아 오른 봉우리 쪽으로 가다가 그 뒷 쪽으로 보이는 능선 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뒤돌아 보는 '적대봉 정상' 쪽 광활한 능선부,





파성재 쪽으로 이동하면서 줄곧 바라 보이는 '거금대교', '소록도', 녹동항' 쪽 풍광,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걸으면서,





계속해서 적대봉으로 오르는 능선을 뒤돌아 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는 저- 광활한 능선부 풍광 때문이 아닐까...





파성재로 가면서 제법 큼지막한 돌탑을 지나고,



돌탑 뒷편으로 바라 보이는 '적대봉 정상부',


돌탑을 지나 얼마를 가자니 제법 넓직한 쉼터가 나타나는데,





현위치, '마당목재', 적대봉에서 1.0Km 내려 온 지점, 이제 파성재까지는 1.6Km,





마당목재에서 잠깐 휴식, 시원한 생수로 갈증도 달래 보고,







질퍽질퍽, 미끄러운 계단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 가면,




전망이 탁- 트인 너덜바위 지대가 나타나는데,



저- 멀리 앞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는 '용두봉(418.6m)',



무슨 주전자처럼 생긴 잘 쌓아 올린 돌탑을 지나는데, 돌탑 옆에는 '등산으로 흘린 땀, 건강으로 보답한다'는 이야기가 씌여 있다.

지당하고도 지당한 말씀∼



얼마간 편안한 계단길을 내려가면,



샘터가 나타나는데, 한 바가지 마셔보니 맑은 약수의 시원한 물맛이 이렇게 상쾌 할 수 없다.



파성재로 가는 등산로는 제법 넓직한 임도로 바뀌고,



산책을 하듯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겨 가면,







적대봉 정상에서 2.3kM 내려 온 지점, 이제 파성재까지는 0.3Km,



쉼터 정자를 지나 얼마를 가자니,



이내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연접한 넓은 주차장이 있는 '파성재'에 도착하게 된다.









대 봉


태고의 전설 가슴에 안고

남해 푸른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그대

힘차게 뻗은 줄기 굳센 기상 서려 있고

장엄한 그 모습 웅비가 숨어 있다

영겁의 숨은 사연 고이 간직한 채

거금을 지켜온 그대

무척 할 말이 많겠구나

보릿고개 부황 꽃 피던 그 시절

우리 함께 울었지

송광암 범종 소리 새벽을 열면

적대의 기운 여명이 밝아오고

차성재 남풍 불면 노란 개나리꽃

산허리를 감는다

그 옛날 말발굽 소리 들리던

목장성 보이지 않고

흰 구름 한가로이 봉화대를 넘는다


금우회


산면 초등학교 67년 졸업 동창생 일동 2006년 1월1일



파성재에는 산악회 등에서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적대봉 등산'은 대부분 이곳에서 종료가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천년고찰 '송광암', '용두봉(418.6m)' 등을 더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현위치, '파성재', 적대봉 정상에서 2.6Km 내려 온 지점, 앞으로 가야 할 송광암까지는 2.5Km, 용두봉까지는 3.0Km,



천년고찰, '송광암'으로 가는 길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천년고찰 송광암,


송광암은 고려 신종 3년(1209년)에 해동불일 보조국사께서 창건하셨다. 전설에 의하면 국사께서는 모후산에 올라 수행터를 찾기 위하여

나무로 조각한 새 세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마리는 송광사 국사전에, 한마리는 여수 앞바다 금오도에 한마리는 금산 송광암에 앉았다

하여 삼송광이라 부른다. 보조국사께서는 고려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하여 정혜쌍수를 수행지침으로하여 조계종을 일으키었다.


적대봉의 변화무쌍한 정기와 용두산록에 은은히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 마를 줄 모르는 감로수의 시원함 반야대의 장엄한 낙조는 여기가

극락세계임을 실감케 한다.



송광암까지는 다소 지루한 포장도로가 줄곧 이어지고 있고,



얼마를 가자니 공사중인 데크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거금대교 일대가 한 눈에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 임도길,



현위치, '대흥, 송광암, 파성재 삼거리', 파성재에서 2.0Km 지나 온 지점, 송광암까지는 0.5Km, 오른쪽으로 대흥까지는 2.0Km,





송광암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



포장도로는 송광암에서 끝나고, 송광암을 지나면서부터는 '적대봉 산행'의 마지막 백미가 되는 험준한 암릉 산행길이 기다리고 있다.



오랜 세월 송광암을 지켜왔을 우람한 느티나무가 송광암 방문을 반갑게 맞아 주는 듯...




송광암(松廣庵),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 전라남도 고흥군 거금도()의 용두봉산() 동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절에서 근래에 정리한 '금산송광암연혁(沿)'1200(고려 신종 3) 보조국사가 창건하고, 1570(선조 3) 선조국사가

다시 세웠다고 되어 있으나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1748(영조 24) 치찬장로(), 1796(정조 20)1806(순조 6) 양익()스님, 1856(철종 7) 등천(), 봉실(), 이원

() 스님 등이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대웅전 안에 건륭 연간(1736~1795)에 조성된 아미타삼존불도가 봉안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불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54년 김원광, 최봉암 스님, 1982년 손석봉 스님이 중창하였고, 1989년에도 불사를 하였다.

송광암에는 주법당인 극락전과 주지실 겸 요사로 쓰이는 청운당(), 니우선원() 등의 건물과 창건 이래 9번의 중창을 했음을

알리는 9창기적비, 석불좌상 등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으로, 내부에 삼존불상과 후불탱, 신중탱, 지장탱,

칠성탱, 산신탱 그리고 범종이 모셔져 있다.



송광암 극락전,





극락전에서 내려다 보는 송광암 경내 풍경,



때 마침 두 손을 합장한채 '탑돌이'를 하고 있는 분들이 보인다.



송광암을 뒤로 하고, '용두봉(418.6m)'으로 가는 길 건너편으로는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적대봉 정상'이 바라 보인다.



송광암을 지나 용두봉으로 가는 길은,



지금이 겨울인가 싶은 '푸르른 잎새들'



지난 가을이 남기고 간 '노오란 낙엽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제 용두봉까지 0.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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