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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인물] 백두대간 17일 만에 일시 종주 이하늘씨.. 아내는 걷고 남편은 식량·물 보급

 

집채만 한 멧돼지에게 소리쳤다 "나 좀 지나갈게"

9월 8일 속리산 천왕봉에서. 종주 중반에 다다르며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지만 몸은 단단해지고 마음은 가벼워졌다.

이하늘씨와 남편 양희종(35)씨는 ‘두두부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두두부부는 ‘두 다리와 두 바퀴로 세계를 여행하는 부부’라는 뜻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인 PCTPacific Crest Trail(4,300㎞)·ATAppalachian Trail(3,500㎞)·CDTContinental Divide Trail(5,000㎞)를 완주한 ‘트리플 크라우너Triple Crowner’ 부부다(본지 2020년 1월호 ‘한국 최초 PCT·AT·CDT 완주한 트리플 크라우너 부부’ 참조).

“스스로 해낼 수 있을까?”

지난 1월 두두부부는 백두대간 동계 종주에 도전했다. 세계 장거리 트레일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트레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산 곳곳을 다니긴 했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해 본 적이 없었기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추진력 강한 부부는 지난 1월 실행에 옮겼고, 지원조나 서포터의 도움 없이 37일 만에 종주했다.

“백두대간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힘으로 다듬어진 멋진 장거리 트레일이었어요. 이 길의 매력이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더 좋은 장거리 트레일이 되고 장거리 하이킹 문화가 형성될 수 있죠. 그래서 일단 우리가 계절마다 걸어보기로 했어요.”

하계 종주도 부부가 함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양씨가 다리를 다쳐 가을이나 겨울 종주로 미루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씨는 문득 생각했다.

“누군가 저에게 ‘장거리 하이킹할 때 남편을 따라 다닌 것이냐?’고 물어봤어요. 어안이 벙벙했어요. 1만2,800km를 스스로 걸은 제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의문이 생겼어요. ‘혼자서도 장거리 트레일에서 발생되는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죠. 그 해답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하늘씨는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로 ‘혼자 백두대간 종주해 볼까?’라고 이야기했는데 뜻밖에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하늘씨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홀로 백두대간으로 나섰다.

백두대간의 북쪽 도착점 진부령에서. 묵묵히 서포터 역할을 해준 남편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하루 40~50km 걸어

혼자 걷는 여정이기 때문에 ‘고 솔로 백두대간’이라는 프로젝트명을 붙였고,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는 ‘완주’이고, 두 번째는 ‘빨리 완주하는 것’이었다.

“하이킹과 트레일러닝 문화 중에 FKTFastest Known Time라는 것이 있어요.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우는 것이죠. 외국 하이커들은 다양한 트레일에서 FKT 기록에 도전해요. 언젠가는 저도 기록에 도전하리라 마음먹었었죠. 그래서 이번에 ‘백두대간 여성 FKT 기록’이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이 목표를 세운 것은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좀더 많은 여성이 자연을 모험하고 즐기는 것을 독려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 혼자서도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다른 여성들이 좋은 자극을 받기를 바란 것이다.

종주는 하루 40~50㎞ 정도 코스로 계획을 세웠다. 쉬는 날 없이 매일 운행하는 일정이었다. 남편이 중간 보급을 맡았다. 사전에 보급지점을 정해 두고 차량으로 이동해 식량과 물을 공급했다. 짧게는 10㎞, 길게는 30㎞ 정도마다 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모든 비법정구간은 우회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가급적 산길로 연결된 우회로를 찾으려했지만 쉽지 않아 결국 많은 경우 도로를 이용해야했다. 희양산을 배경으로.

짐을 최대한 줄인 덕분에 하루 이동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홀로 산길을 걷고 뛰는 것은 오롯이 하늘씨의 몫이었다. 매일 새벽 2~4시에 일어나 종주를 시작했다. 나무로 무성한 숲길로 들어서는 일은 마치 시커먼 입을 벌린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매 순간 두려웠다. 하지만 서서히 동이 트면서 백두대간 능선에서 일출을 맞이하는 것은 매일매일 감동이었다.

힘든 일도 많았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거의 종주 기간 내내 비를 맞았다. 우의는 거의 매일 입었던 반면, 선글라스는 한 번밖에 쓰지 못했다. 신발은 마를 날이 없었다.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하늘씨의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처음에는 ‘도전’을 염두에 두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담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대간을 걷다 보니 그런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즐기면서 장거리 트레일을 걷자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날씨는 어쩔 수 없다지만 ‘비법정구간’은 이번 종주에서 가장 힘든 점이었다. 통제만 하고 우회로를 만들어 놓지 않아 많은 구간에서 도로로 내려와 돌아가야만 했다. 다시 내려왔다 올라가야 하고, 딱딱한 도로를 뛰어야 했기에 체력적인 부담이 더해졌다. 백두대간의 일부를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더욱 컸다. 하늘씨는 “비법정구간이 해제되지는 않는다 해도 공식적인 우회로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힘들었지만 재밌는 일도 많았다.

“고치령에서 마구령으로 가는 도중 길 가운데에 대여섯 마리의 멧돼지가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 순간 겁이 나서 혼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얘들아, 나는 그냥 백두대간 걷고 있어! 너희를 해치지 않을 거야! 나 지나갈게! 지나가도 되겠니? 나 지나간다? 진짜 간다?’ 식으로요. 다행히 멧돼지들이 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재빠르게 그곳을 지나갔죠. 왜 그랬는지,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순간을 영상으로 촬영해 놔서 더욱 생생하게 기억나요.”

더운 날씨를 예상했지만 거의 대부분 일정에 비가 내려 선글라스보다는 우의와 방수 재킷을 더 많이 사용했다.

세계의 백두대간 되길

새벽에 시작한 일정은 저녁 7~9시경 되어야 끝났다. 보급지점에서 남편을 만나면 얼음 녹듯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애타게 기다리던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종주 기간 내내 반복된 일이었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9월 1일 오전 6시 40분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는 9월 18일 오후 8시 9분 진부령에서 끝났다. 비법정구간을 우회한 것까지 포함해 800㎞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기록은 17일 13시간 29분. 여성 백두대간 북진 FKT 기록이다.

“우리나라의 자연과 백두대간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다양한 방법으로 백두대간을 즐기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외국 하이커들이 백두대간을 걷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가지게 되었고요.”

두두부부는 앞으로도 계절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백두대간을 걸을 생각이다. 하늘씨 개인적으로는 하계종주 FKT 기록 단축에 도전할 계획도 있다.

“세상은 신나고 재밌고 호기심 가득한 곳이라 앞으로 제가 또 어떤 계획을 세우게 될지 스스로 기대돼요. 우리 길 위에서 만나요. See you on the trail!”

※ 하늘씨의 백두대간 종주기는 유튜브 ‘두두부부-See you on the trail’ 채널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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