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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봉 정상 인증

 

성주봉 장상 인증

 

성주봉에서

 

태극바위는 둥그런 모양의 평평한 면위로 태극모양으로 균열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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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들레길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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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봉은 지났는데 이정표 꼭대기에 성주봉이라는 푯말이 있다

 

어쨋든 인증

 

나도 인증

 

행치고개를 지난다

행치고개의 유래

여주시민신문 기사에 따르면 예로부터 전해오는 구전에 따르면 자욱한 안개가 휘덮인 날 여강에 머물던 여룡이 금당천을 거슬러 오르다가 운촌리에서 흐르는 샛 개울 완장천으로 접어들어 그윽하게 높이 솟은 보금산을 따라 하늘로 승천했다고 한다.

높이 솟은 준령이 병풍처럼 드리운 마감산에는 옛날 마귀할멈이 살고 있어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려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을 빼앗기도 하여 이 근방의 사람들을 불안케 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험하기로 이름난 산고개가 있다. 어느 날 누나와 남동생이 산 너머 친척집을 가기 위해 험한 이 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남동생은 이제 17살을 넘어섰고 누나는 두어 살 위다.

아무 생각 없이 서로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넘어가는 이들에게 마귀할멈이 느닷없이 검은 먹구름을 몰아다 소나기를 퍼붓는 것이었다.

억수처럼 내리는 비를 피하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마침 집채만 한 바위가 있어, 남매는 부리나케 그리로 가서 비를 피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비에 젖은 누나의 몸을 본 남동생은 이상한 감흥이 일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차마 누나 옆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슬며시 바위 뒤로 돌아들어가 사정없이 돌을 들어 자신의 몸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때쯤일까 아득해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퍼붓던 비도 멎고 한참을 기다려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동생을 찾아 바위 모퉁이를 돌아서던 누나는 자지러지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애지중지 길러온 동생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 노인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동생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급히 내달려 도와줄 것을 간청하니 쾌히 승낙을 했다.

가까스로 동생을 마을 정자까지 옮겨다 놓고 어쩌면 좋겠느냐고 노인에게 물으니, 읍내에 가서 의원을 불러오라는 것이다. 의원을 불러올 동안 동생을 간호해 달라는 부탁과 돌아오던 길이 싫어 도전리 고개를 넘었다. 빨리 걷는 걸음걸이건만 발길은 왠지 더디어 산 고개를 겨우 넘어서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누나가 운촌리 부락을 당도하자 날이 어두웠다 하여 이곳이 ‘어둔’이라고 부른다. 남자 걸음으로 걸으면 불과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죽어가는 동생을 생각하여 갈듯 말듯 망설이며, 오다보니 어느덧 새벽닭이 울어 ‘닭모루’라고 불린 곳이 북내면 ‘당우리’다.

이곳에서 읍내쪽으로 얼마 안와 날이 새어 신남리를 ‘생’이라 부르게 되었고, 읍내에 와서 의원을 데리고 도전리 고개를 넘어 어느 마을 앞에 당도하니 벌써 이곳까지 소문이 퍼져 ‘정말 살아나긴 틀렸네’하던 데서 이 부락을 ‘전거론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마귀할멈의 심술로 인해 순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남매들이 겪었던 비극을 잊을 수 없어, 행동을 다스리라는 의미로 이곳이 ‘행치고개’라고 전해온다.

 

그러나 행치고개 안내문을 보면  행치고개는 여주 강천면 간매리와 부평리를 사이에 두고 여주와 원주를 넘나들던 고개로 단종 유배당시 여주군 대신면 상구리 어수정에서 휴식을 취한 후 강천면 이호리 거문동을 거쳐 매화꽃이 만발한 간매리 설경주를 지나 이 고개에 이르렀다. 임금이 행차한 고개라 하여 행치고개라고 전해 진다고 되어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행치고개로 내려선다

 

뚜깔봉에 도착하니 눈에 익은 준.희님의 표지판이 메달려 있다

 ‘준.희’ 리본을 단 이는 부산 원로 산악인 최남준 선생이다. 그는 명망 높은 산악회인 건건산악회를 이끌며 1대간 9정맥을 162기맥을 주파하며 종주산행 붐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모든 대간 및 정맥을 완주했고,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도 역임한 바 있다. 특히 긴 산줄기를 며칠이건 비박하며 탱크처럼 헤쳐 나가는 산행 스타일로 유명했다.

‘준.희’는 최남준의 끝 글자 ‘준’과 아내 김숙희 여사의 끝 글자 ‘희’를 딴 것이다. 1992년부터 등산리본 작업을 했는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픈 마음에 한동안 산은 물론 외출도 거의 끊고 두문불출했으나. 그러다 아이들도 있는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그리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세 문장으로 리본에 담아 산으로 돌아왔다
 
김숙희 여사님은 교대를 나온 만큼 머리도 좋고 착한 사람으로. 정말 누구 하나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삶이었으며 마침 아내도 등산을 좋아해서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어.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가서 성산일출봉 분지 안에서 텐트 치고 잤다고 한다
 
그렇게 딸 둘도 낳고 살았는데 덜컥 암에 걸려 2년 동안 투병중 암이 발견된 부분 일부만 도려내는 수술을 하고 전이가 심하여  2년동안 간호를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최남준 선생은 등산리본을 손에 쥐고 걷다가 메달아 놓으면 늘 아내와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고 산에서 새가 다가오면 아내가 왔다고 여기며  모든 산에 밤이나 낮이나 아내가 머물고 있는 셈이어서 산에 가면 외로움이 없어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사람라고 한다
 

인증

 

인증

 

인증

 

뚜깔봉을 지나 여주온천으로 내려서기전 요기를 하며 화이팅

 

여주온천앞에서 마감산을 마무리하며 인증

 

여주온천앞에서 우회전하여 도로를 따라간다

 

차량통행량이 많은 도로라서 이런 위험구간 안내 표지판도 있다

 

꼬불꼬불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32코스 종착점 강펀면사무소까지 1km 남았다

 

고래 장작?

 

강천면사무소 인근 여주 32코스 종점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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