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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지고개에서 부터 걸어 온 능선을 뒤 돌아 본다

 

고려산 정상은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그 앞에서 인증샷

 

인증샷

 

군 부대 앞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산 정상목

고려산(高麗山/436m)은 읍내에서 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으며 원래 이름은 오련산으로 서기 416년(고구려 장수왕 4)에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였는데,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려 이들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적석사)와 백련사·청련사·황련사·흑련사를 각각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도읍을 강화로 천도하면서 송도의 고려산 이름을 따 고려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고려산은 연개소문이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으며 주능선에 오르면 탁 트인 서해 바다의 시원스런 조망은 물론, 황해도의 연백군 해안과 예성강 하구를 조망할 수 있어 민족분단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고려산에는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 원통암 등 세 개의 사찰과 한 개의 암자가 있다. 그 중 청련사의 분위기가 제일 뛰어나나 남향에 자리한 사찰 전등사 역시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그윽하고 멋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 적석사 서쪽 절 정상 낙조봉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은 강화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인천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창, 화순의 고인돌군도 자리하고 있다

 

고려산 정상에서 급경사면을 따라 내려오면 사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사거리에서 고개하나를 넘으면 고비고개위로 지나는 출렁다리가 자리하고 있다

 

중앙쯤 오면 심하게 출렁거린다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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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고개위를 지나는 출렁다리

고비 고개의 ‘고비’는 강화의 옛 행정관서가 있던 곳으로, ‘고읍(古邑)’에서 유래된 지명이고. '고읍'은 '고읍이' '고비' '고부'로도 불렸다고 한다. 고려 시대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39년 동안 몽골에 맞서 싸우다 개경으로 돌아갈 때 강화의 궁궐과 성곽이 몽골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무렵 강화의 행정관서가 내가면 고천리로 옮겨와 ‘심주(沁州)’라고도 불렸는데, 이후 ‘심도(沁都)’는 강화의 별칭이 되었다. 관아터, 향교터, 형옥터와 장터라 전해오는 곳이 있으며, 조선 세종 때 행정관서가 현재의 읍내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강화의 행정중심지였다고 한다. 

 

혈구산을 향해 오른다

 

고비고개를 지나 1봉 2봉 3봉을 지난다

 

혈구산 퇴모산 갈림길에 서 있는이정표

 

혈구산 정상

 

혈구산 정상에서 지나 온 고려산을 바라본다

 

혈구산 정상석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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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구산에서 강화읍내를 바라본다

 

혈구산은 높이가 466m로 용혈의 근원이자 고려의 정기를 품은 산으로 여신의 성격을 띠었으며, 예로부터 용이 나고 국가의 재난을 알리는 곳, 대운산(戴雲山)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의미를 지닌 산으로 마니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 전해진다. 혈구산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정상에 올라 주위를 보면 가슴이 벅차고 힘이 저절로 솟구치는 살아 숨쉬는 산으로 정기가 산 정상으로 항상 넘쳐 흐르고 있다. 또한, 강화 중앙부에 위치하여 강화 전경을 골고루 볼 수 있는 산이다

 

새 한마리가 비상하는 모습

 

농업기술센타 갈림길

 

퇴모산에 서 있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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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통과

 

공동묘지 통과

 

농업기술센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농경문화관에 위치한 연자방아 모형

 

강화 농업기술센터를 자나서 황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하여 산행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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