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는 크게 4개의 등산 코스가 있다. 홍콩섬을 가로 지르는 ‘홍콩트레일’, 신계지와 주룽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윌슨트레일’, 신계지와 주룽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맥리호스트레일’,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인 란타우에서 즐기는 ‘란타우트레일’ 등이다. 각 트레일은 다시 세부 구간으로 나뉜다. 중급 이상의 코스들이라 제대로 경험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그렇다고 어려운 코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도 있다. 홍콩 트레일 가운데 가장 쉬운 코스 중 하나는 홍콩섬의 ‘피크서클워크’다. 홍콩 최고 전망대 ‘빅토리아 피크’가 있는 타이펑산(太平山·554m) 산허리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홍콩의 도심을 감상하는 코스다.
1. 홍콩 드래곤 트레일
2. 윌슨 트레일
윌슨 트레일은 홍콩에서 두 번째로 긴 크로스 컨트리 하이킹 루트로 남쪽에서 북동쪽 지역까지 뻗어있다. 섬과 섬 사이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 홍콩의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Double Heaven 해양공원, 순수한 섬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하카 마을, 풍수나무로 우거진 숲길 등 다양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3. 맥리호스 트레일
맥리호스 트레일(MacLehose Trail·麥理浩徑)은 구룡반도를 동서로 관통하는 길로, 특히 해안을 따라 걷는 구간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1979년 제25대 총독 머레이 맥리호스 경에게서 이름을 딴 트레일로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 가운데 하나다. 총 10개의 스테이지로 트레일을 구분하며, 산세나 경사도를 따져 구간마다 1~5급의 난이도를 매겨두었다.
맥리호스 트레일의 백미는 두 번째 구간인 롱케(Long Ke·浪茄)에서 첵켕(Chek Keng·赤徑)을 거쳐 팍탐아우(Pak Tam Au·北潭凹)로 이어지는 길이다. 총 13.5km 거리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만만치 않은 곳으로, 홍콩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선을 구경할 수 있는 점이 이 구간의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걸어가다 산에 올라 굽이치는 해안선을 조망할 수 있다.
정상 샤프피크 주변으로는 작은 봉우리들이 흩어져 있다. 전설대로 중앙에는 비단뱀이 대가리를 치켜들고, 주변으로 여러 봉우리들이 모여 있는 형국이다.
서만정(西灣亭, Sai Wan Pavillon)까지 택시 타고 가서 출발지점에 섰다. 이 지점이 구룡반도의 끝이라고 한다. 구룡반도도 재미있는 곳이다. 중국인들은 모든 산에 용(龍)이 한 마리씩 살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산을 용으로 본다는 풍수적 의미다. 송나라 시절 폐위된 황제가 홍콩으로 왔다. 이 지역의 여덟 봉우리를 보고 ‘팔룡’이라고 명명했다. 옆에 있던 신하가 나서 팔룡이 아니라 구룡이라고 한다. 원래 여덟 마리의 용에 황제를 포함하면 아홉 마리가 된다고 간언한다. 예나 지금이나 간신이 문제다. 이후로부터 구룡반도로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시원한 바다가 보이다가 잠시 숲 속으로 들어선다.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이 안 되는 호수가 나온다. 홍콩에서 가장 큰 ‘하이 아일랜드 저수지’. 홍콩 시민들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1970년대에 지어졌다. 거대한 화산 산성 유문암층이 있는 곳으로 2009년 홍콩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저장용수가 엄청날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크다.
서만까지 2.5km에 45분 걸린다는 이정표가 있다. 트레킹 조성할 때 경사면이 있어서 그런지 트레일을 전부 콘크리트로 포장했다. 걷기에 썩 좋은 길이 아니다. 우리의 동백 같은 난대성 수종이 길 양 옆으로 가로수 마냥 채워, 그늘을 드리워 준다. 저수지 사이로 작은 산봉우리들이 봉긋봉긋 솟아 있다.
뾰족하게 솟은 정상 염사첨은 어디서나 보여
취간유(吹簡呦)계곡을 지나 서만이 저만치 보인다. 서만은 대랑만(大浪灣, Tai Long Wan)의 서쪽에 있는 조그만 만(灣)이다. 큰 만에서 다시 육지 쪽으로 들어왔으니 파도가 심하지 않다. 사람들이 해변에서 즐기기 좋다. 식당과 카페가 몇 군데 보인다. 근처에 들어서니 서만촌(西灣村)이라는 안내판이 반긴다.
이제부터 당분간 해변으로 걸을 예정이라고 가이드가 안내한다. 조금 더 가면 캠핑장이 있다는 안내도 나온다. 마을 사이로 지나 해변에 닿았다. 해변에는 잔잔한 파도가 밀려온다. 산과 바다의 만남이다. 여태 산길로 다니다 모처럼 모래 위를 걸어본다. 해변을 걸어본 지 얼마만인가. 부드러운 느낌이 가슴까지 스미어 와 닿는 듯하다. 발자국을 남긴다. 파도가 밀려와 금세 지운다. 또 남긴다. 또 지운다…….
해변 끝 지점 함틴(Ham Tin)마을에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여기는 함틴만이다. 파도가 잔잔할 수밖에 없다. 든든한 식사로 배를 채운 후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맥리호스의 변칙 코스다. 맥리호스 트레일은 산으로 올라오지 않고 타이롱마을로 접어들어 해변으로 가지만 산길로 방향을 틀어서 간다.
이제부터 홍콩에서 가장 난코스라고 불리는 샤프피크(Sharp Peak·468m)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샤프피크는 홍콩 말로 ‘염사첨(蚺蛇尖)’. 정상 염사첨은 비단뱀같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해변에서 유독 솟아 있다. 홍콩 전설로는 뱀이 고개를 치켜든 채 똬리 틀어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한다. 주변의 봉우리들을 다스리는 형국이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해변에서 바로 치고 올라가는 코스다. 가이드는 “해변이 해발 마이너스로 나오더라”고 말한다. 제로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거의 500m까지 내리막 한 구간 없이 올라가야 한다.
트레일은 산을 깎아서 조성했지만 여전히 콘크리트다. 걷기에 영 별로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기에 여념이 없다. 나무들이 사람 키 높이도 안 된다. 거의 관목 수준이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걷는다. 우산인지 양산인지 쓰고 다니는 홍콩 트레커들도 간혹 눈에 띈다. 시원한 바다를 보는 감상은 있지만 햇빛이 눈이 부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폐부 깊숙이 들어 마셔본다. 온몸이 시원해진다. 홍콩에서 쐬는 바람이라 더욱 상쾌한 듯하다. 잠시 해변이 나오다가 이내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제부터는 흙길이다. 샤프피크까지 줄곧 오르막이다. 가이드는 “지금부터 전부 오르막이고 햇빛을 가려 주는 곳은 중간에 단 한 곳뿐이니 그곳에서 잠시 쉬시고 가는 게 좋다”고 미리 알려 준다.
오르막 산길은 중간 중간 흙이 파인 길이 제법 나온다. 가이드는 태풍이 왔을 때 경사가 가팔라 파인 흔적이라고 말한다. 조금 전까지는 사람 키높이의 관목이었지만 능선 하나를 올라서니 허리 정도밖에 안 되는 관목들이 산을 뒤덮고 있다. 햇빛이 내리쬐고 12월인데도 20℃를 훨씬 웃도는 날씨다. 역시 홍콩은 홍콩이다.
한참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탁 트인 바다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지나온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등산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뿌듯한 감정이 스멀스멀 생긴다. 해냈다는 느낌일까. 그래서 더 등산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등산객들이 제법 오르내린다. 홍콩 사람뿐만 아니라 간혹 서양 사람도 보인다. 태풍에 파인 등산로는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흙은 마사토같이 푸석푸석하다. 자칫 미끄러지기 쉬워 조심해서 걷는다. 높지는 않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땅만 보고 계속 오른다.
한 고개 위로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이제 마지막 봉우리가 저 앞에 보인다. 바로 정상 샤프피크, 일명 염사첨이다. 바로 옆에서 본 염사첨은 정말 뱀이 대가리를 들고 똬리를 틀고 있는 형국 같다. 뱀도 예사 뱀 같지 않다. 대가리를 치켜 든 모양새가 기운이 넘친다.
정상 봉우리가 눈앞에 잡힐 듯한데 마지막 오르막길이 제법 가파르다. 숨을 크게 들어 쉰다. 서양 여자가 가파른 바위 위에 힘든 듯 앉아서 쉬고 있다. 스위스에서 왔다고 한다. 이름은 프란체스코. 혹시 “가톨릭 신자냐?”고 물으니 아니라며 “샌프란시스코의 프란체스코”라고 답한다. 씩 웃으며 돌아선다.
조망 확트인 정상
드디어 염사첨 정상에 올라선다. 역시 정상은 시원하다. 사방 조망도 확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활짝 열게 한다. 염사첨 정상에 대해 안내판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샤프피크봉은 홍콩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다. 쾌청한 날에는 홍콩 경계지점까지 다 볼 수 있다. 정상 봉우리는 해변에서 바로 솟아올랐기 때문에 원뿔 모양의 모자같이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샤프피크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홍콩에서 야생 하이킹에 해당한다. 정상에서는 타이롱만의 남쪽 끝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사이완이 발아래 있다. 정상까지는 쉽지 않은 코스이기 때문에 트레킹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오르는 게 좋다. 지도 등고선을 보다시피 마지막 등산로는 매우 가파르고 땅은 자갈투성이에 매우 불규칙하다. 경험 있는 사람들과 같이 단체로 오르는 게 좋다.
4. 란타우 트레일
토테이완(To Tei Wan)~섹 오 피크(Shek O Peak)~드래곤스 백~포팅거 갭(Pottinger Gap)~타이 롱 완(Tai Long Wan)~(섹오 비치까지는 마을 버스로), 약 7km, 약 2시간 40분
빅토리아 피크 트램정거장~루가드 로드~할레크로드~원점회귀, 약 3.5km, 약 1시간 20분
란타우섬 트레일은 무이워 지역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70km에 이르는 환형 트레킹 코스다. 완주하려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20~30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란타우는 ‘부서진 모자’를 의미하는데, 란타우 트레일의 정상인 봉황산의 봉우리 꼭대기가 부서져 2개로 나뉘어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란타우 트레일을 걷는 내내,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걸어가야 길이 커다란 나무 하나 없는 초원지대 능선 사이로 선명하게 나타난다. 태양이 내리쬐는 계절에는 도저히 걷기 힘들 것이다. 간간히 보여주는 바다와, 그리고 봉황산 주변에 이르면 발밑을 따라 오는 해무가 양념거리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좌불상이 모셔진 포린 사원과, 수상가옥이 빼곡하게 늘어선 타이오 어촌마을 등과 같은 볼거리도 갖고 있다.
▲ 코스: 트레일 3 구간에서 6구간까지
- 트레일 3 구간: 빠공아오(Pak Kung Au)~옹핑(4.5km, 2시간 30분)
- 트레일 4 구간: 옹핑(Ngong Ping)~샴와트(Sham Wat Road) 도로(4.0km, 2시간 25분)
- 트레일 5 구간: 샴와트 도로~만청포(Man Cheung Po) (7.5km, 2시간 4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