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암봉이 험하여 우회하여 내려서서 돌아보니 아찔하다

 

 

군부대 황생방 훈련장 안내판과 포탄껍질로 만들어 놓은 종

 

 

불현(불견)고개에 도착한다.

연천읍지에는 부처님을 본 고개라 하여 佛見領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불견고개가 옳을것 같다

 

 

불현고갯길에는 눈이 쌓여있고 사람이나 차량이 지나간 흔적은 없고 우리가 처음 지나간다

 

 

벌러덩 월악개

 

 

佛見山과 佛見(불현)고개에 대한 유래

 

불견산은 이름 그대로 불교와 관련된 산이름이다.

<불교영험설화집>에 실려 있는 '심원사 대종불사기'가 대표적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고려 7대 목종 때의 일인데 연천군의 보개사나 심원사에서 대종불사를 하게 되어

스님들이 각지로 다니며 시주를 걷고 있었다.
부인네들은 쌀과 돈뿐만 아니라 젓가락 부러진 것까지 가진 것을 모조리 찾아내 열심히 시주하였다.

 

당시 대광리에 이덕기라는 장님과 박춘식이라는 앉은뱅이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죽마고우였는데 덕기는 열병을 앓아 눈이 멀었고, 춘식은 소아마비로 앉은뱅이가 되었다.
그들은 만나면 항상 신세 한탄을 했다. "우리는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몸을 받았을까?"

 

불구의 몸이 된 까닭을 전생에 지은 죄로 생각하며 이를 업보로 여기고,

대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로 이 모든 업장을 소멸하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여보시오 처사님들 적선공덕을 많이 하오.

한 물건 시주하면 만복이 절로 생기는 일, 부처님의 자비와 가피로 모든 재앙 소멸하고,

현생에서도 복을 얻어 수명장수 이루소서!" 하고 외치고 지나갔다.

 

이덕기가 이를 듣고,"스님!  우리같이 죄 많은 중생들도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고 시주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있구 말구요.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을 내 자식 같이 대하시므로

병든 자식을 둔 부모가 그 병신을 불쌍히 여기듯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펴 주실 것니다." 

 

탁발스님의 이 한 마디 말에 큰 용기를 얻은 두 사람은 그 길로 거리로 나서서 3년을 넘게 구걸하였다.
장님이 앉은뱅이를 업고 앉은뱅이는 장님에게 길눈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눈물겹게 구걸하여

쇠붙이를 모아 화주승에게 바치니 화주승도 감격하여 그들을 감싸안고 격려하였다.
 
이윽고 종이 만들어지고 절이 중수되어 대종(大鐘)의 준공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서는 태산준령을 넘어 보개산 심원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에 오르니 힘이 모자라 몸에서는 구슬땀이 떨어지고 입에서는 불꽃처럼 달구어진 숨결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러나 화주승이 가르쳐준 '나무대자대비 관세음보살'만을 한없이 부르며 간신히 그 산마루에 올랐다.

 

그 때 앉은뱅이가 외쳤다. "저기 저 부처님을 보아라!"

그리고는 업힌 등허리에서 뛰어내려 곧 부처님 곁으로 달려가려는 듯 몸부림친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쭉 펴졌다.

그 때 장님도 "어디 부처님이 어디 있어?"하고 두 눈을 비비며 크게 뜨자 자신의 두 눈이 찢어지면서 그만 눈이 떠지고 말았다.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부처님이 그들이 사는 마을에 큰 빛(大光)을 쏟아 비추며

오색구름에 쌓여 둥실둥실하늘 높이 올라가는 황홀경이었다.
 
덕기와 춘식은 날이 밝도록 그 부처님께 절하며 서로 붙들고 울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부터 이 큰 고개를 부처님을 뵌 고개라 하여 불견령(佛見嶺)이라 하였고,

부처님의 광명이 크게 쏟아져 내린 그들이 사는 마을을 대광리(大光里)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보개산에서 대광리로 통하는 이 산을 불견산(佛見山: 부처의 현신을 본 산)이라 부르는데,

<연천읍지>,<연천현고읍지도>,<동여도>

<조선지지자료>,<조선전도>,<불교통사>,<경기고지도첩>,<해동지도/ 연천첩> 등에서 불견산의 기록을 볼 수 있다.

 

 

불견고개를 넘어 뒤돌아 본다

 

 

좌측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감투봉으로 향한다

 

 

입도는 육산임도라고 적혀있다

 

 

임도길 차단막을 통과

 

 

임도에서 암봉으로 되어있는 불견산을 바라본다

 

 

우리는 474고지로 향한다

 

 

뒤돌아 보니 고대산에서 보개봉을 지나 지장산으로 이어지는 눈이 하얗게 덯여있는 능선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지나 온 불견산

 

 

탱크벙커를 지난다

 

 

많은 눈이 쌓여있는 경사가 심한 임도를 임겹게 오른다

 

 

임도 고갯길도 넘고

 

 

임도에서 가야 할 감투봉과 그 능선을 바라본다

 

 

뒤로 고대산에서 잘려온 능선에서 솟아있는 지장산과 화인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541봉 방향

 

 

474고지에서 바라 본 눈 덮힌 산하는 너무 아름답다

 

 

474고지에서 조망

 

 

474고지를 지나면 감투보잉 나타나지만 아무런 표식도 없다

 

 

선답자들이 리본을 메달아 놓았을텐데 군부대에서 작업중 모조리 제거해 버린 것 같다

 

 

수리봉 인증샷

 

 

수리봉 인증샷

 

 

수리봉에 붙어있는 리본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라 나무와 풀들어 베어버린 방화사 능선이다

 

 

첫번제 능선 정상

 

아래로 연천읍내가 한가롭게 자리하고 잇다

 

 

조망이 시원하다

 

 

왼쪽으로 성산이 조망된다

 

 

철조망 통과

 

 

지장산과 화인봉

 

 

군부대 벙커 봉

 

 

지나 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벙커봉을 넘어간다

 

 

성산과 그 능선

 

 

앙금재봉과 왼쪽으로 연천읍내가 조망된다

 

 

앙금재봉이 가가워지자 연천읍내가 발아래에 있다

 

 

지장산을 배경으로

 

 

앙금재봉이 바로 앞에 있다

 

 

탱크벙카앞 통과

 

 

생을 마감한 억새줄기위에 눈 한 줌이 소복하게 쌓여있다

 

 

앙금재봉

 

 

양금재봉에서 뒤돌아 본다

 

 

앙금재봉 인증샷

 

 양금재봉(養金財峰) 유래

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의미지만, 임장서원(臨璋書院)과 관련해서 연유된듯 하다.

즉 중국 고부현의 무이촌(武夷村)과 지형조건이 흡사해서 지명을 그대로 옮겨 명명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중국 무이촌의 한자표기는 현재 양금재봉(養金財峰)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뜻의 '양금령'(陽琴嶺)이다

 

 

연천대교 옆 개천을 지난다

 

 

연천군청 근처의 연천골 가마골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며 고대단맥 산행 종료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