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어퍼로치.
집을 나선지 24시간만에 리장공항에 도착했다.
리장.
중국 운남성 북부 해발고도 2400미터에 위치한 나시족 자치현.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고성이 있는 곳.
그 옛날 티벳으로 향하던 차마고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
수많은 마방들이 먼 길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수허이고성이 있는 곳.
이 정도가 내가 아는 리장의 전부다.
먼 길 떠나온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짐부터 분류했다.
내일 트레킹을 할때 필요한 것과 설산등반용 장비를 나눠서 배낭과 카고백에 넣고 구입이 필요한 것들을 챙기다 보니 벌써 시간은 자정이 가깝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인 제이형님의 아리따운 사모님께서 끓여주신 송이버섯 잔뜩 들어간 라면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가 이 꼬마아가씨를 만났다.
가족들이 아침으로 먹을 춘권을 사가는 길이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은 리장에서도 제법 부촌인듯 집집마다 주차장이 갖춰져있고 대부분 외제승용차가 한두대씩 서있다.
우리도 서둘러 아침을 먹고 첫 여정인 호도협트레킹을 떠나기로 했다.
가는 길에 과일시장에 들렀다.
사과, 배, 대추, 수박 등등이야 우리도 늘 먹는 과일이지만 망고나 망고스틴 그리고 여러가지 이국적인 과일들이 식욕을 자극한다.
50위안어치를 사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틀은 충분히 먹을 양이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호도협(虎渡狹, 후타오샤)의 관문인 차오터우
저 다리를 건너서 직진하면 샹그릴라를 향하고 우회전하면 호도협으로 통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최종 브리핑을 들었다.
호도협 - 윈난 성[雲南省] 리장나시족 자치현[麗江納西族自治縣]의 스구[石鼓] 북동쪽에 있다.
양쯔 강[揚子江]의 상류인 진사 강[金沙江]이 이곳에 이르러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흘러가므로 '양쯔 강에서 으뜸 가는 물굽이'라고 불린다.
협곡의 길이는 16㎞이다.
오른쪽 기슭에 있는 위룽쉐 산맥[玉龍雪山脈]의 주봉은 높이가 해발 5,596m에 이르며, 왼쪽 기슭의 중뎬쉐 산[中甸雪山] 혹은 하바설산은 해발 5,396m이다.
양 기슭 사이에 있는 물길의 너비는 30~60m에 불과하다.
후타오 협의 상류 쪽 입구는 해발 1,800m, 하류 쪽 입구는 해발 1,630m에 있다.
양쪽 기슭에 늘어선 봉우리와 수면의 고도 차이는 2,500~3,000m로, 골짜기 언덕은 험준하고 가파라서 성대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골짜기 안의 하천은 하류 쪽으로 흘러내리면서 7개의 험한 비탈을 잇따라 지나게 된다.
물의 낙차는 170m이며 물살이 용솟음치면서 솟아오르고 몇 리(里 : 1리는 500m)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깊고 큰 협곡의 하나로 꼽힌다.
옥룡설산은 낮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꿈틀거리듯 흐르는 금사강의 묽은 물결은 내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장관이다.
그렇게 첫날 호도협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호도협을 따라 길게 늘어진 길은 두 개의 패스로 불린다.
저 아래 강가를 따라 달리는 로우패스는 버스를 타고 그냥 지나가는 길.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전망이 좋은 곳에 잠시 내려 사진만 찍고 내달린다.
사진 왼쪽 6부능선쯤 가느다란 실처럼 이어진 길은 하이패스.
호도협 트레킹은 하이패스를 걷는것을 말한다.
해발 2000에서 출발하여 가장 높은 2800미터의 28밴드를 넘어서 다시 2000미터의 티나에 닿는게 보편적인 루트다.
이렇게 높은 고도를 우리나라에서는 겪어볼 수 없기에 고소가 가장 염려스럽지만 길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순하다.
수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라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다.
이곳은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중간중간 객잔도 세워지고 돌에 페인트로 적은 안내판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첫 쉼터인 나시객잔 갈림길에서 만난 폴란드 젊은이들.
야영장비를 모두 가지고 여행 중인데 참으로 부러웠다.
저렇게 싱싱하고 푸르른 시절에 이런 길을 걸어보지 못한게 억울하달까?
나시객잔은 호도협트레킹의 첫 게스트하우스다.
주인아주머니와 그 딸들이 운영하는데 밝고 명랑하게 사람들을 맞는다.
뜨거운 차 몇잔을 마시니 몸이 개운해지고 다시 기운이 솟는다.
나시객잔을 지나 호도협의 크럭스 28밴드를 향하는 폴란드청년들과 우리 일행들.
내 원래의 목표는 티벳 라싸를 향하는 차마고도를 발로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그런 상품이 우리나라엔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일단 중국내 차마고도를 걷는 것이었다.
그 출발은 당연히 리장이었고 하바설산을 원정하겠다고 팀을 꾸린 저 분들에게 빌붙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암벽을 하시는 분들인데 정말 유쾌하고 좋은 분들이시다.
나 같은 개차반을 열흘 가까이 품어 주실 분들이 그리 흔한가?
28밴드가 가까워지면 이런 말과 마부들이 흔해진다.
힘든 고개길을 말타고 편하게 오르라는 배려다.
물론 댓가는 지불해야한다.
고개가 가까울수록 가격은 싸다.
이 어린 친구는 중학교 2학년인데 방학이라 부모님을 대신하여 마부로 나왔단다.
뒤로 처진 일행들과 떨어져 급경사 오르막을 숨가쁘게 오르다 돌아보니 금사강이 저만치 아래로 떨어져있다.
한국인을 좋아한다는 아저씨.
어린 시절 가설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배우 박노식선생을 많이 닮았다.
이 아저씨와 한참을 앉아서 손짓 발짓으로 떠들며 일행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길래 그냥 28밴드로 올랐다.
출발 전부터 28밴드가 고비라고 주의를 몇차례 주기에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결국 오르는 줄도 모르고 올랐다.
호도협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차마객잔 표시가 보이는 이 자리에서 홀란드에서 왔다는 젊은 커플을 만났다.
그들에게 28밴드가 아직 멀었냐고 물으니 이미 지나왔단다.
조금 전 호도와 대마초 말린 것을 파는 할머니와 생수와 콜라를 파는 아주머니,
그리고 바위 위에서 몸을 말리던 뱀 한마리가 있던 그 조망대가 28밴드였던 모양이다.
건너편 옥룡설산이 7부능선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5596미터의 옥룡설산은 운남성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나시족의 성지.
관광지로 개발되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지만 그 정상은 아직 미답인 곳이다.
나시족이 워낙 신성시하여 등반허가도 나지 않지만, 언젠가 일본사람들이 돈으로 등반허가를 받아 오르다가
산사태로 전원 몰살하는 바람에 그 후로는 아예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단다.
같이 출발했건만 혼자 걷는 길이 되고 말았다.
암벽을 하시는 분들이라 워킹이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다들 고소 때문에 몸 사린다고 천천히 걷는듯 아예 따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지리산 짐승은 오늘도 외로이 혼자 걷는 수 밖에.
그러나 걷다가 혼자 떠나 온 중국인도 만나고, 독일커플, 아일랜드 커플, 한국커플.....
많은 사람들과 스치고 동행하고 그러다가 또 혼자 걷고....
참 행복하고 즐거운 길이다.
내내 똑 같은 풍경이건만 볼때마다 감탄스럽고 달라보인다.
구름이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그림이고 구비만 하나 돌아도 다른 장소이다.
시야가 좋아서 가까워 보이지만 저 아래 강물까지 직선거리로 얼마나 될까?
4시간만에 차마객잔이 보이는 조망대에 도착했다.
저 멀리 호도협의 끝 티나가 있다는 협곡의 출구도 보이고.
저까지 직선거리로 30킬로란다.
시야가 좋긴 정말 좋다.
한참을 기다리니 우리 일행들이 웃으면서 도착한다.
다들 모여서 간단하게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선다.
지금까지가 1부였다면 이제부터는 2부란다.
그리고,
1부보다는 2부가 더 진국이라는....
호도협에는 나시, 차마, 중도, 티나 네개의 유명한 객잔이 있다.
쉽게 말해서 게스트하우스인데 뜨거운 물과 식사가 가능한 곳이라 트레커가 하룻밤 쉬어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그 옛날 이곳을 지나던 탐험가들이 밤이면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음식과 물을 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집 주인이
아예 그들을 위하여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기 시작한게 객잔의 출발이라니,
결국 이 객잔들은 초기의 용감한 트레커들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 최초의 객잔이 차마객잔이다.
거리상으로야 하루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후딱 지나치기 보다는 하룻밤 머물면서 그 분위기에 푹 빠져보는게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그러나 일정에 쫓기는 우리는 아쉬움만 남기고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참고로 하룻밤 숙비는 2만원. 오골계 백숙도 2만원.
고도가 많이 낮아진듯 길은 좀 더 협곡에 가까워지고 그만큼 디테일도 선명해진다.
그리고 이젠 몸도 적응이 되었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맞은편 옥룡설산에 부딪힌 진사강의 물소리가 공명이 되어 여기까지 들려온다.
우렁우렁우렁......
다들 어디쯤 객잔에 머무는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걷던 이국의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이제 우리 일행들만 남은 길을 재촉하는데
길은 내내 여기가 거기인듯 굽이를 돌고 마을을 지나고 협곡을 내려다보며 실처럼 이어진다.
오후 늦은 시각
옥룡설산이 그 정상부를 보일듯 말듯 애를 태우는데 그 엄청난 기운이 한순간에 나를 향해 쏟아질듯 숨막힌다.
차마 저곳을 오르고 싶다는 욕심조차 내기 힘들 지경이다.
비가 많은 우기이지만 물이 흐르는 계곡과 폭포가 드문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토질이 석회질이라 물이 빨리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표면으로 흐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객잔에 가까워질 무렵 그랜드캐년을 떠올리게 하는 긴 협곡과 그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나타나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
여기서 로우패스로 굽하게 내려선다.
하이패스를 따라 티나까지 갈수도 있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이곳에서 로우패스로 내려서서 차량으로 티나객잔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람은 다 똑같은지 이곳 산길에도 곳곳에 샛길들이 숨어있다.
그 숨은 샛길을 찾아서 째고 내려오니 까마득하던 로우패스가 금방이다.
여담이지만 이번 여행 내내 지리산에서 갈고 닦은 잡스러운 스킬들이 참 유용했다^^
로우패스에 서서 바라본 옥룡설산은 그 위용 때문에 숨이 턱 하고 막힐 지경이다.
산이라는게 붙으면 어딘가에 길이 있겠지만 참으로 그럴 마음이 안생긴다.
저 건너편에도 조로서도(鳥路鼠道)라 불리는 실핏줄 같은 길이 보인다.
로우패스는 차량이 다니는 길이지만 항상 낙석의 위험이 있어서 위험하다.
얼마 전에도 낙석으로 6명이 죽었단다.
인명은 재천이니 내가 어찌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빵차라 불리는 우리나라 다마스만한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도로사정이 참 열악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얇고 부실한 아스팔트포장, 좁은 도로폭, 급한 커브, 곳곳에 낙석으로 파묻히고 파여진채 방치된 구간.
그러나 그 모든것을 다 감안해도 이 길은 꼭 달려봐야 한다.
그만큼 호도협은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중국의 젖줄이라는 양자강은 저렇게 시작된다.
겨울에는 푸른 옥빛으로, 여름이면 붉은 흙빛으로 흘러 광활한 중국대륙을 적시며 흐른다.
그 속에서 중화라 불리는 위대한 문화가 탄생했고,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무시무시한 자부심을 키웠다.
그들은 저 흙탕물을 金沙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들은 저 흙탕물을 진짜 금으로 바꾼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위대하다.
그러나 그 자연에 굴복하지 않고 자연을 자신들의 문화의 일부로 만들어 버린 인간들이 더 위대하다.
차마고도는 거칠고 위태롭고 초라하지만
그 길을 통하여 인간들이 이루어낸 문화는 높고 찬란하고 영원하다.
호도협이 가장 거칠고 위태로운 곳에 티나객잔이 있다.
이곳은 호도협트레킹의 종착역이다.
트레커들은 여기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지친 몸을 쉰다.
우리도 이곳에서 따리맥주로 오늘 하루를 축하하고 마감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룻밤 머물고 싶지만 짧은 일정에 욕심 많은 여행객은 길에서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저녁을 먹고 밤길을 다시 몇시간을 달려 하바촌으로 가야 오늘의 일정이 끝난다.
하바
하바설산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