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야산을 찾아서(2004년 6월 22일)
이틀동안 많은 비가 내리더니 어제 오후부터는 비가 멈추었다
6호 태풍 "디엔무"와 중국쪽에서 내려온 저기압의 영향으로 내린 비였다.
지난해 "매미"보다 더 쎈 "디엔무"가 우리나라를 비켜가서 다행이다
비가 멈추자 산행하고 싶은 마음에 대야산 산행을 결정하였다
대야산은 경북 문경 가은과 충북 괴산 청천을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 상에 솟아있는 산이라고 한다
6월 22일(화)의 새벽은 후덥지근하게 시작되었다
새벽 6시20분경 하이웨이주유소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아는 사람이 없어 서먹한 마음에 뒷자석에 자리했다
88도로에 들어서 창밖을 보니 뿌연 안개로 시야가 흐려져 있었다
후덥지근하고 안개끼는 새벽이었지만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웠다
그래서 일까 새벽을 가르며 중부고속로도를 달리는 마음도 상쾌하였다.
일죽에서 음성, 괴산을 지나 문경 가은에 있는 대야산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는 차 한 대 없이 썰렁하였다.
아침 9시30경 주차장을 출발하여 산행은 시작되었다
주차장 위쪽에 대야산 등산로 입구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등산로 계단을 올라 낮은 산언덕을 넘어 묵은 밭을 지나자 용추골 계곡이 나왔다
묵은 밭에는 풍년초, 엉겅퀴 등 여름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용추계곡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용추계곡은 문경8경중의 하나로 빼어난 계곡의 자태가 자랑이라고 한다
용추계곡에는 한쌍의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계곡은 흰색바탕의 넓은 바위들로 이루어졌고, 흐르는 물은 맑고 풍부하였다
계곡 옆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멘트길이 끝나는 지점의 계곡에는 넓은 웅덩이가 있었다
웅덩이는 계곡위에서 힘차게 물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시멘트길이 끝나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었다
이정표에는 대야산까지 2시간이 소요된다고 되어 있었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산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신갈나무 등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생강나무 산죽나무 등의 관목들이 나즈막히 숲을 이루고 있었고
관목 숲속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어울려 자리하고 있었으며
물기를 잔뜩 머금은 돌이끼들을 머리에 이고있는 바위들은 힘없이 누워 있었다
길가에 파란꽃을 반쯤 피운채 수줍은 듯 서있는 한그루의 싸리나무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계곡에는 물이 너무 많아 두 번이나 신발을 벗고 멘 발로 계곡을 건넜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멘 발을 담군 계곡물을 무척 차가웠다
엊그제 내린 많은 비로 인해 등산로는 물로 많은 곳이 씻겨 나가 버렸다
비가 멈춘 이후 우리가 처음 산행인 것 같아 보였다
30여분쯤 지나 밀재와 대야산을 오르는 갈림길 월영대에 도착하였다
왼쪽으로는 밀재 가는길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피아골을 지나 대야산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피아골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앞서가는 사람의 흔적을 쫓아 피아골 계곡을 따라 계속 올랐다.
정상까지 2시간으로 되어있어 가볍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평평한 듯 하다가도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비온뒤라서 오르막 등산로는 무척 미끄러웠다
벼랑같은 비탈길에 늘어진 자일을 붙잡고 미끄러운 비탈길을 오르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아 가파르게 오르는 축축한 길을 오를때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파르고 축축한 경사로를 따라 기어서 오르다 보니 넓은 계곡 웅덩이가 나왔다
웅덩이에서 젖은 땀을 씻고 잠시 쉬었다가 5분여를 올랐을까
10여미터 높이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폭포까지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바위사위로 길게 자일이 걸쳐 있었다.
자일에 메달려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까지 도착하여 위를 쳐다 보았다
적당한 수량으로 힘차게 떨어지는 물조각들은 하얀 포말을 이루고 있었다.
10여미터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올려다 보니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폭포수에 머리를 적셨을때에는 가슴속까지 아리도록 시원하였다
폭포 오른쪽으로 뻗어있는 가파른 바위능선을 따라 힘겹게 기어 올랐다
바위틈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힘겹게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는 철제 자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제자일에 의지하여 바윗길을 지나 앞을 보니 하늘과 맛닿은 능선이 보였다
이제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돌과 흙으로 깔린 비탈길을 기다시피 하여 올랐더니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에서 본 풍광은 장관이었다
정상은 첩첩히 겹쳐진 산들로 감싸여 있었다
등산지도를 펼쳐 보았더니 대야산을 기점으로 하여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는 촛대봉, 곰넘이봉, 장성봉이 남쪽으로는 밀재가
동쪽으로는 용추골이, 서쪽으로는 농바위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뒤따라 오던 일행을 기다렸으나 30여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었다
뒤를 돌아 보면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올라올 때에는 안내표시가 잘 되어 있었으나 하산길에는 안내표시가 없었다
하산을 하다가 갈림길에서 우리는 우왕좌왕하였다
할 수 없이 두사람씩 나누어 하산하기로 하고 나누어 하산하였다
하산길 역시 급경사가 많아서 쉽지가 않았다.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보니 물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물소리를 따라 계속 하산하였더니 계곡이 나타났다
계곡과 접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었다
왼쪽으로는 밀재
우리가 내려오던 길은 대야산 정상
아래로는 용추라고 되어 있었다
계곡옆 길을 따라 하산하던 중 등반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궁금하여 물어보았더니 안산에서 온 거북이 산악회라고 하였다
내려오면서 만난 등반객을 가늠해 보니 대형버스 2대 인원이 충분하였다
피아골 갈림길을 지나 게곡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하산하였다
내려오는 길 주변의 계곡에는 많은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우리도 넓은 바위위를 흐르는 물에서 발을 담그기로 하였다
나는 웃옷을 훌훌 벗고 시원한 물로 몸을 적셨더니 가슴 속까지 시원하였다
많은 이목이 있어 차마 바지는 벗지를 못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보니 산행에는 4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았다
주차장옆 파고라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점심을 먹었다
얼음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막걸리를 꺼내 마셨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백두대간이란>>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지어 동·서해안으로 흐르는 강을 양분하는 큰줄기를 대간·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고 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부근에 이르러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智異山)까지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국토의 근골(筋骨)이라 하였다.
대간을 이루는 주요 산은 백두산(2744m)을 기점으로 한 남동쪽의 포태산(胞胎山, 2289m)·두류산(頭流山, 2309m) 등으로 이어져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양분하고, 남서쪽의 황초령(黃草嶺)과 남쪽의 철옹산(鐵瓮山, 1085m)·두류산(頭流山, 1324m), 남서쪽의 추가령(楸哥嶺, 752m)으로 연결되었다. 다시 동해안을 끼고 금강산(金剛山, 1638m)·설악산(雪嶽山, 1708m)·태백산(太白山, 1567m)으로 이어지다가 내륙의 속리산(俗離山, 1508m)을 거쳐 지리산(1915m)에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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